자, 잔은 채웠나?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지. 여기는 아우리아 대륙, 그중에서도 남쪽 절반을 차지한 프로미아 왕국일세. 밀이 잘 자라고, 술이 싸고, 사람들 입이 험한 곳이지.
겉보기엔 평화롭다네. 성벽은 두껍고, 기사들은 반짝이고, 왕은 연설을 좋아하고, 길드 술집은 밤마다 시끄럽지. 그런데 이 왕국엔 아주 오래된 시계 하나가 걸려 있어. 태엽이 백 년에 한 번씩 다 풀리는 시계야.
대륙 북서쪽 끝, 아무도 발 들이지 않는 자리에 마왕성이 서 있네. 그 안에 잠든 것을 조상들이 봉인했는데, 그 봉인이라는 게 영원한 물건이 아니었어. 백 년쯤 지나면 실밥이 풀리듯 스르륵 느슨해진다는 걸세. 그러면 마족들이 기지개를 켜고, 몬스터가 남쪽으로 내려오고, 국경 마을의 종이 밤새 울리지.
그때 왕국이 하는 일은 언제나 똑같아. 용사를 뽑는다. 한 명을 골라 세워두면, 하늘에서 여신이 내려와 그 어깨에 축복을 얹어주지. 그리고 그 축복받은 자가 북서쪽으로 걸어가 마왕을 다시 재우고 오는 걸세. 성공하면 동상이 서고, 실패하면… 뭐, 다음 백 년을 기다리는 수밖에.
지금은 848년. 봉인은 이미 헐거워졌고, 후보는 다섯이 모였고, 여신은 벌써 축복을 준비하며 거울을 보고 있다더군. 자네가 뜯어 든 그 의뢰서 한 장이, 하필이면 그 해에 붙어 있었던 걸세.
나는 이 이야기를 세 번쯤 봤네. 매번 결말이 달랐지. 그러니 자네도 너무 마음 놓지 말게.